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23.07.02. 천응교회의 모델은 초대교회 - 한석 목사

2023-07-01
조회수 275

천응교회의 모델은 초대교회

한석 목사

래리 허타도(Larry Hurtado)는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이라는 책에서 ‘로마 제국 당시 기독교는 가장 박해받는 종교였기에 엄청난 사회적 희생이 따랐음에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래리 허타도가 소개하는 내용을 다섯 가지 요소로 여기에 소개한다. 1) 여러 인종과 민족이 함께한 공동체: 기독교가 발생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민족 종교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가진 신앙은 참된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며 모든 사람은 그분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에게 신앙이란 민족의 배경과 상관없이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 속하는 문제여서 다른 무엇보다 깊은 연대감을 주었다. 어떤 민족이나 문화적 배경을 지녔든지 주를 믿으면, 여러 인종과 민족이 함께하는 공동체에 소속되었다.


2)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돌보는 데 헌신한 공동체: 그 시대에는 (혹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자기가 속한 가문이나 종족 안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서로를 돌보았다. 그러나 가난하고 소외된 ‘모든’ 사람을 그렇게 돌보아야 한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이와 다르게 초대 교회는 어려움에 처한 ‘모든’ 사람을 품었는데, 이는 그 자체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이교도인이 보기에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3) 되갚지 않고 용서한 공동체: 초기 기독교인은 타인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해도 앙갚음이나 복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처형을 당하거나 원형 경기장에서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도 오히려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로 유명했다. 이렇게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용서하는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4) 낙태를 비롯한 유아 살해를 강력히 반대한 공동체: 당시의 기독교인은 낙태를 비롯한 유아 살해를 강력히 반대했다. 부모에게 버려져 죽어가거나 노예로 팔려 갈 위기에 처한 아이를 발견하면,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양육했다. 그런 차원에서 초대 교회는 낙태에 반대했으며, 이는 자기 민족, 자기 가문만을 중심으로 계층화되어 명예만 중시하던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5) 성 윤리를 근본적으로 바꾼 공동체: 로마 사회에서 성관계는 욕구를 해소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그 목적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었다. 결혼한 여성은 다른 누구와도 관계를 가질 수 없었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남성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와도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상대가 자기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면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결혼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를 하나님 사랑과 구속이라는 우주적 질서에 연결시켰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셨기에 우리는 다른 대상이 아니라 오직 그분께만 우리를 온전히 드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차원에서 성관계는 자기 만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언약 관계 안에서 삶 전체를 내어 주는 행위로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혼전성관계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런 새로운 전망은 다시 남성을 비롯한 상류층이 휘두르던 권력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여성이 보기에 기독교는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는 매력적인 종교로 인식되었다. 

위의 5가지 초대교회 특징들 중 천응교회는 어떤 것이 닮았을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