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21.10.17. 신자의 짐이 무겁게 생각될 때에 - 한석 목사

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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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짐이 무겁게 생각될 때에

한석 목사

우리 한 개인의 삶 그 자체만 보아도 너무나 힘든 삶이다. 인생 자체도 버겁고 힘들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행동의 자유, 언행에서의 주의 등등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써 늘 작은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제약들이 있다. “세상 사람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 죄가운데서 해방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설교와 가르침을 받고 있다. 어떤 때에는 이 모든 것들이 짐이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는 교회를 다니는 신자, 목사, 기독교를 유독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있는 이유도 목사, 신자, 교회가 본질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삶의 비판에서 출발한다.


세상의 온갖 유혹과 비아냥을 인내로 참아내고 견디어야 한다. 이러니 우리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사는가! 신자가 불쌍하다. 똑같은 실수나 잘못을 해도 교회를 다니는 신자에게 돌아오는 소리는 늘 싸늘하다. ‘예수쟁이들 다 그렇지 뭐!’ 요즘 같은 때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교회들의 모습과 대형교회들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옳지못한 일들이 세상사람들의 비아냥 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짐으로 지고 사는 그리스도의 삶은 얼마나 힘이 들까? 만일 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면 참으로 힘들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무거운 짐들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서 자유하고 살고 있나요? 그들의 비판을 무시해 버리고 살고 있나요? 아니면, 예수의 사람인 것을 숨기고 있나요? 시계추처럼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서 조용하게 지내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요 1장 50-51절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라고 말씀하신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와서도 "와서 보라"고 했지요? 요 1장 50-51절에 ‘본다’는 말씀이 3회 나오지요. 나다나엘은 최소한 삼중적으로 예수님을 본 것이다.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나다나엘은 본다. 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허무시어 하늘과 땅 사이의 사다리를 놓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는 모습을 봄으로써 하늘문이 열린 것을 그는 본다. 그리고 장차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심판하러 오실 때 나다나엘도 그 주님을 볼 것이라는 의미도 이 안에 들어 있다. 나다나엘은 이렇게 예수님을 본 자이다. 그래서 그의 삶이 놀랍도록 변했고 현실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여기고 신자의 길을, 교회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나도 나다나엘처럼 ‘본’자일까?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축이며, 내 인생의 답이며, 내 인생의 기준인 것을 나다나엘처럼 ‘본’자일까?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이고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하나님 보좌에서 하나님을 ‘본’자일까? ‘본’자는 세상의 무거운 짐들에서 자유한다. 왜냐하면 더 크고 더 찬란하고 더 아름답고 더 보배로운 것을 ‘본’자는 현실의 짐들을 이겨낸다. ‘주님을 보라!’ ‘주님(사다리)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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