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21.5.9. 자녀 양육 - 복음 위에서 ② -한석 목사

2021-05-08
조회수 613

자녀 양육 - 복음 위에서 ②

한석 목사

지난 주일 목양칼럼에 부모가 자녀를 통제하려는 '통제의 우상'에 대해 살폈다. 부모인 자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위해 행하시는 일에 돕는 자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내 자녀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하나님보다 먼저 일하고 계획하게 된다. 그럴 때 대부분의 부모는 주로 세가지 통제 수단을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인간적인 통제수단이 되어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힘든 상황을 야기시킨다.


첫째, 두려움을 통해 통제하려는 경우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변화시킨다는 명목으로 협박한다. "한번 만 더 이런 일을 하면, 가만히 두지 않을꺼야" 라는 식의 협박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사랑으로 순종하는 방식이 아닌, 위협이 두려워 순종하는 방식은 참된 변화를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보상을 통해 통제하려는 경우이다. 자녀에게 확실한 보상을 통해 자녀에게 변화를 주려고 한다. "너 이것을 하면 동영상 보여줄께…게임시켜줄께."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때로는 영적 보상을 약속하시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보상은 은혜가 동기가 된 순종이후에 오는 것이지, 그 행위 자체가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상을 통한 통제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율법과 은혜의 순서가 뒤바뀐다.


셋째.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불러 일으켜 통제하려는 경우이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 "너를 위한 희생의 대가가 이거니?" 수치심과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양육의 방식은 부모의 능력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루어지는 방식이지만 무릎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한계를 자녀의 문제로 만들어 변화를 일으켜보려는 왜곡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폴 트립은 부모와 자녀가 사춘기에 부딪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화와 친밀함 사랑이 결여된 상태에서 통제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100% 통제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두려움으로 죄책감으로 우리를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기를 선택하셨고 그 은혜가 오늘 우리를 살리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결국 부모는 하나님이 나를 양육하시는 은혜의 방식을 배워가야 한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먼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모든 삶의 변화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며 무릎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다음 스텝의 행동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늘에서 부어지는 생각으로부터 출발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때론 두렵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직면한다는 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 된다.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기 때문에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 때론 자유로 가는 첫 번째 문이 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