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2. 자녀 양육 - 복음 위에서 ①
한석 목사
<책 추천>
1) 완벽한 부모는 없다(폴 트림, 생명의 말씀사)
2) 복음에 견고한 자녀 양육(강성환, 길미란, 세움북스)
제가 제 아내와 함께 네 자녀를 양육해 오면서 느꼈던 경험과 감정들을 나누고자 한다. 자녀들을 양육해 오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분노하는 일이 많이 있었다. 왜 이렇게 좌절하고 분노할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식을 통제하려고 하는데, 엄마 아빠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였던 것 같다. 저는 이것을 부모의 ‘통제의 우상’이라 부른다. 어린시절은 엄마나 아빠의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만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자의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여러가지 갈등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더 유익하다는 이유로 여러가지를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통제가 우상이 되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폴 트립은 부모와 자녀가 사춘기에 부딛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화와 친밀한 사랑이 결여된 상태에서 통제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100%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많은 경우에 ‘잘못된 통제’가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100% 통제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두려움으로 죄책감으로 우리를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기를 선택하셨고 그 은혜가 오늘 우리를 살리고 살아가게 한다. 결국 부모는 하나님이 나를 양육하시는 은혜의 방식을 배워가야 한다.
그리고 자녀의 말과 행동에 실망하여 좌절하여 울 때도 있고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결국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부모안에 있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보게 해 주었다. 부모의 정체성이 복음이 아니고, 욕심, 성공, 욕망…이런 내 모습을 자녀들을 통하여 보게 해 주었다. 그래서 자녀양육은 부모가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저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자녀는 부모의 스승’이라 부른다. 자녀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게 되어진다.
폴 트립은 <완벽한 부모는 없다>에서 가장 훌륭한 양육은 부모로서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히 무릎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양육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을 깨닫지 못하면,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 더 강한 규율로 자녀의 마음에 노여움을 심어주고 속박을 심어주게 된다. 자녀 양육이란 자녀를 변화시키기 위해 부모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변화시키기 위한 권위를 허락하셨지만, 자녀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언제나 능력 없음을 깨달으며 무릎으로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거의 매일 무능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정답이 없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먼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모든 삶의 변화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며 무릎으로 나아가야 한다.
21.5.2. 자녀 양육 - 복음 위에서 ①
한석 목사
<책 추천>
1) 완벽한 부모는 없다(폴 트림, 생명의 말씀사)
2) 복음에 견고한 자녀 양육(강성환, 길미란, 세움북스)
제가 제 아내와 함께 네 자녀를 양육해 오면서 느꼈던 경험과 감정들을 나누고자 한다. 자녀들을 양육해 오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분노하는 일이 많이 있었다. 왜 이렇게 좌절하고 분노할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식을 통제하려고 하는데, 엄마 아빠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였던 것 같다. 저는 이것을 부모의 ‘통제의 우상’이라 부른다. 어린시절은 엄마나 아빠의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만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자의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여러가지 갈등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더 유익하다는 이유로 여러가지를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통제가 우상이 되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폴 트립은 부모와 자녀가 사춘기에 부딛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화와 친밀한 사랑이 결여된 상태에서 통제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100%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많은 경우에 ‘잘못된 통제’가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100% 통제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두려움으로 죄책감으로 우리를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기를 선택하셨고 그 은혜가 오늘 우리를 살리고 살아가게 한다. 결국 부모는 하나님이 나를 양육하시는 은혜의 방식을 배워가야 한다.
그리고 자녀의 말과 행동에 실망하여 좌절하여 울 때도 있고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결국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부모안에 있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보게 해 주었다. 부모의 정체성이 복음이 아니고, 욕심, 성공, 욕망…이런 내 모습을 자녀들을 통하여 보게 해 주었다. 그래서 자녀양육은 부모가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저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자녀는 부모의 스승’이라 부른다. 자녀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게 되어진다.
폴 트립은 <완벽한 부모는 없다>에서 가장 훌륭한 양육은 부모로서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히 무릎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양육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을 깨닫지 못하면,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 더 강한 규율로 자녀의 마음에 노여움을 심어주고 속박을 심어주게 된다. 자녀 양육이란 자녀를 변화시키기 위해 부모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변화시키기 위한 권위를 허락하셨지만, 자녀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언제나 능력 없음을 깨달으며 무릎으로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거의 매일 무능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정답이 없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먼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모든 삶의 변화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며 무릎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