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의 고민: 삶의 체계로써의 신앙(삶과 신앙) ②
한석 목사
<정서적으로 건강한 리더>라는 책에 보면, ‘외적으로 드러난 삶에서는 계획과 의사를 결정하고, 문화와 팀을 구축하고, 힘과 지혜로운 경계와 끝과 새로운 시작 등등 여러 모습으로 삶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더 깊은 내적인 뿌리를 제대로 해결할 때 이루어지는 영역들’, ‘겉’은 ‘속’에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내면 깊은 곳의 그림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외적으로 드러난 삶은 괜찮아 보여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함몰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달리 말하면, 복음이 그 사람의 가장 깊은 정서를 변화 시키지 못하면, 적당한 은혜로 마음의 동기가 변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가 바라보고 있는 천응교회 성도들(목회자인 저를 포함하여)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 내면이 복음으로 바뀌거나 해결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적당한 은혜로 종교적인 포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종교적이고 교회적이지만, 실상 인생의 선택과 걸음에 복음이 보이지 않는다. 방과후교실에서 열심히 일하는 교회의 지체들을 보면서도, 자녀와 장래의 문제를 놓고 대화하는 교회 중직자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도, 결혼을 하는 자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목사의 제 눈에는 전혀 하나님 나라 가치관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목양을 하는 목사인 제 모습 속에도 목사의 곁 모습은 그럴 듯 하지만 제 속에 복음으로 채워져 있거나 복음의 가치관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다. 목회가 복음의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예배를 (주일 오전예배, 오후찬양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많이 드린다고 해서 신앙적이라 말할 수 없지만, 예배를 주일 오전에만 드리고 나머지는 실천적 무신론자(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 나라 가치관은 절대 아니다.
저의 고민, ‘천응교회’ 성도에게 복음은 무엇일까? 우리 교인들은 복음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그 마음의 내면의 문제가 복음 안에서 형성되고 있는가? 목회자인 저는 내면의 문제를 복음으로 해결하고 있는가? 가장 근본적인 것은 어쩌면 ‘담임목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목사인 저에게 ‘복음이 깊이 뿌리 내릴 때 삶의 근본적인 동기가 변화될 것이고, 이것은 천응 지체들에게 복음의 내면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천응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의 부요함’을 경험하는 일 일지 모른다. 건강하고 개혁적인 교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면에 복음이 전혀 없는 교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복음은 무엇일까?’ 갑자기 우리 주님이 가장 싫어하는 외침이 떠오른다. ‘외식하는 자들아!’
목회의 고민: 삶의 체계로써의 신앙(삶과 신앙) ②
한석 목사
<정서적으로 건강한 리더>라는 책에 보면, ‘외적으로 드러난 삶에서는 계획과 의사를 결정하고, 문화와 팀을 구축하고, 힘과 지혜로운 경계와 끝과 새로운 시작 등등 여러 모습으로 삶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더 깊은 내적인 뿌리를 제대로 해결할 때 이루어지는 영역들’, ‘겉’은 ‘속’에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내면 깊은 곳의 그림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외적으로 드러난 삶은 괜찮아 보여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함몰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달리 말하면, 복음이 그 사람의 가장 깊은 정서를 변화 시키지 못하면, 적당한 은혜로 마음의 동기가 변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가 바라보고 있는 천응교회 성도들(목회자인 저를 포함하여)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 내면이 복음으로 바뀌거나 해결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적당한 은혜로 종교적인 포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종교적이고 교회적이지만, 실상 인생의 선택과 걸음에 복음이 보이지 않는다. 방과후교실에서 열심히 일하는 교회의 지체들을 보면서도, 자녀와 장래의 문제를 놓고 대화하는 교회 중직자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도, 결혼을 하는 자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목사의 제 눈에는 전혀 하나님 나라 가치관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목양을 하는 목사인 제 모습 속에도 목사의 곁 모습은 그럴 듯 하지만 제 속에 복음으로 채워져 있거나 복음의 가치관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다. 목회가 복음의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예배를 (주일 오전예배, 오후찬양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많이 드린다고 해서 신앙적이라 말할 수 없지만, 예배를 주일 오전에만 드리고 나머지는 실천적 무신론자(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 나라 가치관은 절대 아니다.
저의 고민, ‘천응교회’ 성도에게 복음은 무엇일까? 우리 교인들은 복음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그 마음의 내면의 문제가 복음 안에서 형성되고 있는가? 목회자인 저는 내면의 문제를 복음으로 해결하고 있는가? 가장 근본적인 것은 어쩌면 ‘담임목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목사인 저에게 ‘복음이 깊이 뿌리 내릴 때 삶의 근본적인 동기가 변화될 것이고, 이것은 천응 지체들에게 복음의 내면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천응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의 부요함’을 경험하는 일 일지 모른다. 건강하고 개혁적인 교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면에 복음이 전혀 없는 교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복음은 무엇일까?’ 갑자기 우리 주님이 가장 싫어하는 외침이 떠오른다. ‘외식하는 자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