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22.01.30. 목회 현실의 무게와 변화 - 한석 목사

2022-01-29
조회수 887

목회 현실의 무게와 변화

한석 목사

저는 현재 제 목회와 삶의 한계에 직면하여 고민하고 있다. 천응교회의 2021년 연말과 2022년 연초를 보내면서 제 목회의 부족함을 여러 곳에서 여러 소리들로 듣고 있다. 예를 들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교회가 따뜻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는데, 목사님은 왜 저 만을 타켓 삼아 말씀을 전하세요.’ ‘목사님, 좀 느슨하고 유도리 있게 목회해주시만 안되요.’ ‘너무 법대로만 하려고 하세요.’ ‘왜 그렇게 설교 말씀이 심각하고 늘 어려워요.’ 등등의 소리들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소리들로 제 자신을 겸손케 하니 감사하다.’

 

또 한편으로 여러가지 소리들을 들으면서 저는 생각에 잠긴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성도의 삶의 변화는 쉽지 않고, 한 두 가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의 전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단지 설교 하나 만으로, 예배 하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제 나름, 예배에 목숨을 걸고, 설교에 목숨을 걸고, 기도에 생명을 다하면 교회가 건강해지고 공동체가 세워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는데, ‘그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현실의 삶의 무게 앞에서 ‘변화’(성장)는 어떻게 가능할까?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강단에서 선포된 설교는 대개 신앙이 좋은 10%는 아멘으로 받고 삶으로 적용시킨다. 그러나 나머지 80%는 그렇게 살고 싶지만 훈련되지 않아서, 구체적이지 않아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나머지 10% 부정적으로 설교를 듣는다’고 말한다. 중간지대에 있는 80% 성도들은 살고 싶지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설교를 따라 살도록 만드는 일이 무엇?

 

제 경험상 삶의 변화는 소그룹(구역모임)에서 가장 강하게 일어난다. 설교가 불이라면 소그룹(구역모임)은 불이 지속적으로 탈 수 있는 땔감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 중심에는 소그룹(구역모임) 리더십(구역장과 부구역장)의 본이 필요하다. 설교가 방향 제시라면 소그룹(구역모임과 구역장)은 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공급한다. 목회자와 성도 지도자(구역장, 부구역장), 설교와 소그룹이 연속성을 가지면 변화가 일어난다.

 

설교를 은혜롭게 듣지만 삶의 변화가 더디게 되면 성도들도 지치게 되고, 목회자의 은혜로운 설교는 점점 강도가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변화는 없고 이상한 내성(듣고만 끝나는)이 생긴다. 그러나 100% 말씀대로 살지 못하지만, 넘어지고 또 넘어지지만 완벽한 모델은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나침반으로 살아가는 성도 리더십의 본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격려를 받게 된다.

 

교회에서 은혜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성도 지도자의 본은 더 중요하다. 각 구역마다, 각 선교회마다 본이 되는 리더들이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변화는 어려워진다. 예수를 닮아가는 성도 지도자, 성도들이 따르고 싶어 본받고 싶어하는 성도 지도자가 천응교회에 있을까? 교회의 건강은 설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중요하지만), 설교로 시작된 변화가 소그룹(구역모임) 안에서 본이 되는 성도 리더들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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