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생활(2)
한석 목사
제가 시드니에 도착하자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할 때(그 당시 청년들) 함께 신앙생활했던 40대 초 중반의 집사들이었다. 아마도 우리 천응의 지체들도 얼굴만 보면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러분은 오랜 만에 지인을 만나면 무얼 하시나요? 저는 그들과 맛집에서 두 세 시간에 걸쳐서 식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일상의 대화를 하고 신앙의 대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지인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호주 시드니 집 값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좋은 집들을 사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자녀들은 대부분 좋은 학교(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여 실력을 쌓고 있었다. 그들의 사업장이나 그들의 직장에서 꽤 높은 편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어떤 이는 연봉이 25만불 정도)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시드니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신앙생활은 너무나 엉망이었다. 신앙이 진보하거나 자라나거나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그렇게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다.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코로나 때문이에요!" "담임목사의 인격 때문이에요!" "설교에 은혜가 없기 때문이에요!" "너무 바빠서요!" "가족들을 먹어 살려야 해서요!" "건강이 좋지 않아서요!" "시드니에 정착하기 위해서요!" 등등이었다.
저는 그들과 2007년도에 헤어지고 거의 15년만에 다시 만났다. 나름대로 큰 기대를 했다. 15년의 세월동안 그들의 생활환경이 바뀌었듯이, 그들의 신앙도 더 깊어지고 자라고 성장하고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교회 생활은 하고 있으나 그들의 삶에 '복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도 교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자리에 복음의 통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각자 나름의 이유와 원인들이 다 있었다. 더 이상 '신앙생활 어떤가요?' 이런 질문을 받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제가 너무나 답답해서 한 형제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복음이 먼저냐 돈이 먼저냐?" "이제 그만 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살지 말아라" "더 조금만 있으면 나이 50이야!" "주님(복음)을 위해 살아가야지."
제가 천응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데, 설교를 듣고 있는데,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기도를 하고 있는데, 왜 저렇게 영적으로 자라나지 않을까?' '왜 퇴보하고 있는 것일까?' '왜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들이었다. 저는 이것을 시드니의 지인들에게서 보게 되었다.
담임목사인 제가 없던 6개월 동안 여러분은 아주 조금이라도 신앙(영적)이 자라나셨나요?
시드니 생활(2)
한석 목사
제가 시드니에 도착하자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할 때(그 당시 청년들) 함께 신앙생활했던 40대 초 중반의 집사들이었다. 아마도 우리 천응의 지체들도 얼굴만 보면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러분은 오랜 만에 지인을 만나면 무얼 하시나요? 저는 그들과 맛집에서 두 세 시간에 걸쳐서 식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일상의 대화를 하고 신앙의 대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지인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호주 시드니 집 값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좋은 집들을 사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자녀들은 대부분 좋은 학교(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여 실력을 쌓고 있었다. 그들의 사업장이나 그들의 직장에서 꽤 높은 편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어떤 이는 연봉이 25만불 정도)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시드니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신앙생활은 너무나 엉망이었다. 신앙이 진보하거나 자라나거나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그렇게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다.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코로나 때문이에요!" "담임목사의 인격 때문이에요!" "설교에 은혜가 없기 때문이에요!" "너무 바빠서요!" "가족들을 먹어 살려야 해서요!" "건강이 좋지 않아서요!" "시드니에 정착하기 위해서요!" 등등이었다.
저는 그들과 2007년도에 헤어지고 거의 15년만에 다시 만났다. 나름대로 큰 기대를 했다. 15년의 세월동안 그들의 생활환경이 바뀌었듯이, 그들의 신앙도 더 깊어지고 자라고 성장하고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교회 생활은 하고 있으나 그들의 삶에 '복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도 교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자리에 복음의 통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각자 나름의 이유와 원인들이 다 있었다. 더 이상 '신앙생활 어떤가요?' 이런 질문을 받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제가 너무나 답답해서 한 형제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복음이 먼저냐 돈이 먼저냐?" "이제 그만 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살지 말아라" "더 조금만 있으면 나이 50이야!" "주님(복음)을 위해 살아가야지."
제가 천응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데, 설교를 듣고 있는데,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기도를 하고 있는데, 왜 저렇게 영적으로 자라나지 않을까?' '왜 퇴보하고 있는 것일까?' '왜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들이었다. 저는 이것을 시드니의 지인들에게서 보게 되었다.
담임목사인 제가 없던 6개월 동안 여러분은 아주 조금이라도 신앙(영적)이 자라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