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25.06.15. 두 나라 시민으로 산다는 것(2) - 오이삭 목사

20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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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나라 시민으로 산다는 것(2)

 오이삭 목사

신자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의 백성으로 사는 존재, 즉 두 나라 시민으로 사는 사람들이란 말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연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디모데전서 당시의 신자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신자들의 대부분은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계급적으로 하층민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놀라운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종들의 상전들, 특히 상류층의 부인들이 전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종들이 전한 복음과 종들이 보여준 신앙인격에 매료되어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정신과 성경의 가르침은 평등사상에 가까웠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모두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높고 낮음이 없고, 모두가 형제와 자매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 나라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할 때에는 형제와 자매로 환대하고 말씀과 성찬과 기도로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전과 종이 대등하지 않고, 종은 상전을 섬겨야 합니다. 종이 현실에서 상전을 대등한 존재로 대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만만하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를 욕먹게 하고, 기독교를 경우없는 종교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종들에게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공경할 자로 알라고 합니다. 믿는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 잘 섬기라고 말합니다.

 

두 나라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복음이나 신앙, 또는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주입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변화시키며 구원해 가시는 과정을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사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주일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하는 동안에 그 직장을 다녀야 하고, 그 직장에 충성되게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지켜야 하는 양심이고, 이웃사랑이고, 두 나라를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되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는 모습이 신자에게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맡은 우리는 정당한 분별과 책임있는 삶을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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