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 있는 지체를 대하는 법
오이삭 목사
어려움과 고난은 예고없이 찾아옵니다. 요즘은 경제적인 고난이 심한 것 같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IMF때보다 요즘이 더 힘들다고 말합니다. 일거리뿐 아니라 가정경제들도 매우 어려운 시기라고 합니다. 육체적인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도 최근 뜻하지 않은 육체적인 고통과 질병들이 찾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지체와 가족 중에 허리와 갈비뼈에 골절이 생긴 분들, 여러 가지 아픔과 질병으로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나 다른 분야에 찾아온 문제들로 고난 중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난은 창세기 때부터 시작해서 구약과 신약시대를 지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존재합니다. 왜 고난이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아주 크고 깊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고난에 대한 질문에 너무 쉽게 대답하거나 답을 주려는 것은 사실 상대방에게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고난에 대해서 가볍게 해석하거나 충고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난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자신의 말이 그 고난의 눈물 위에 올라 탈까 조심스러워야 하며, 누군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 안에 갇힌 말만 한다면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공격이 됩니다. 누군가의 고난에 대해서 위로하고 싶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나의 한정된 경험과 짧은 언어로 상대방의 고난을 가볍게 다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문제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숨막히는 고통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말도 실제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항상 말이 쉽고, 충고는 더 쉽지만, 누구도 충고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을 보시며 충고하거나 말을 하시지 않고 우리처럼 되시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같이 되셔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형제의 고난에 함께 하며 함께 울어주고 슬픔을 나누는 천응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지체를 대하는 법
오이삭 목사
어려움과 고난은 예고없이 찾아옵니다. 요즘은 경제적인 고난이 심한 것 같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IMF때보다 요즘이 더 힘들다고 말합니다. 일거리뿐 아니라 가정경제들도 매우 어려운 시기라고 합니다. 육체적인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도 최근 뜻하지 않은 육체적인 고통과 질병들이 찾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지체와 가족 중에 허리와 갈비뼈에 골절이 생긴 분들, 여러 가지 아픔과 질병으로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나 다른 분야에 찾아온 문제들로 고난 중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난은 창세기 때부터 시작해서 구약과 신약시대를 지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존재합니다. 왜 고난이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아주 크고 깊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고난에 대한 질문에 너무 쉽게 대답하거나 답을 주려는 것은 사실 상대방에게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고난에 대해서 가볍게 해석하거나 충고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난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자신의 말이 그 고난의 눈물 위에 올라 탈까 조심스러워야 하며, 누군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 안에 갇힌 말만 한다면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공격이 됩니다. 누군가의 고난에 대해서 위로하고 싶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나의 한정된 경험과 짧은 언어로 상대방의 고난을 가볍게 다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문제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숨막히는 고통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말도 실제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항상 말이 쉽고, 충고는 더 쉽지만, 누구도 충고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을 보시며 충고하거나 말을 하시지 않고 우리처럼 되시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같이 되셔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형제의 고난에 함께 하며 함께 울어주고 슬픔을 나누는 천응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