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회를 넘어서
오이삭 목사
설날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많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양력으로 1월 1일을 새해 첫날을 신정으로 보내고, 음력으로 설날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새해를 맞아 야심차게 세웠던 계획이 작심삼일로 틀어졌어도 음력 설날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실패했어도 괜찮아, 두 번째 기회인 음력 설날이 있잖아.’ 두 번째 기회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참 따뜻하고 힘이 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은 기회를 두 번만 준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의 문화는 삼세번은 기회를 주어야 하는 문화이므로 세 번의 기회는 기본적인 것 같습니다. 복음서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일곱 번 용서하면 되냐고 물어본 것으로 보아 당시 문화에서 최대로 줄 수 있는 기회가 일곱 번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우리 주변에 항상 세 번에서 일곱 번 사이의 기회를 주고 용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내심과 용서의 화신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세 번이든 일곱 번이든 횟수가 정해져 있고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이와는 좀 다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물으신 것은 베드로에게 ‘세 번 부인했으니 네 번째 기회를 줄게 회개하거라.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실수하지 말아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야, 나는 네가 세 번이나 부인한 그 연약함 위에 교회를 세울거야.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을 너의 실패 위에 세울거야.” 이것이 예수님의 위대한 은혜의 정체이며, 교회는 우리의 실패를 덮는 은혜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 천응교회는 우리의 잘한 것이나, 선행이나, 또는 회개나 종교 행위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죄인들이고, 육체의 열매와 실수들만 만들어 내는 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런 심각한 죄인들이 모였는데,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교회로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인데, 우리가 감히 바라고 원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받은 죄인입니다. 이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상대방에게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천응공동체의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 기회를 넘어서
오이삭 목사
설날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많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양력으로 1월 1일을 새해 첫날을 신정으로 보내고, 음력으로 설날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새해를 맞아 야심차게 세웠던 계획이 작심삼일로 틀어졌어도 음력 설날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실패했어도 괜찮아, 두 번째 기회인 음력 설날이 있잖아.’ 두 번째 기회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참 따뜻하고 힘이 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은 기회를 두 번만 준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의 문화는 삼세번은 기회를 주어야 하는 문화이므로 세 번의 기회는 기본적인 것 같습니다. 복음서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일곱 번 용서하면 되냐고 물어본 것으로 보아 당시 문화에서 최대로 줄 수 있는 기회가 일곱 번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우리 주변에 항상 세 번에서 일곱 번 사이의 기회를 주고 용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내심과 용서의 화신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세 번이든 일곱 번이든 횟수가 정해져 있고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이와는 좀 다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물으신 것은 베드로에게 ‘세 번 부인했으니 네 번째 기회를 줄게 회개하거라.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실수하지 말아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야, 나는 네가 세 번이나 부인한 그 연약함 위에 교회를 세울거야.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을 너의 실패 위에 세울거야.” 이것이 예수님의 위대한 은혜의 정체이며, 교회는 우리의 실패를 덮는 은혜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 천응교회는 우리의 잘한 것이나, 선행이나, 또는 회개나 종교 행위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죄인들이고, 육체의 열매와 실수들만 만들어 내는 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런 심각한 죄인들이 모였는데,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교회로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인데, 우리가 감히 바라고 원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받은 죄인입니다. 이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상대방에게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천응공동체의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